[1부] '복이 많은 얼굴입니다'.. 길거리에서 시작되는 유사종교 접근의 공식
[탐사일보=정병호 기자] 퇴근길, 길을 걷던 기자에게 한 중년 남녀가 말을 걸어왔다.
낯선 사람의 갑작스러운 접근이었지만, 첫 마디는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칭찬이었다.
대화는 곧 조상과 덕, 마음공부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들은 자신들을 일반적인 사찰 소속 승려가 아닌, 미륵 부처를 믿으며 수행하는 ‘스님’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흔히 ‘도를 아십니까’로 불리는 곳들과는 다르다”, “그런 방식은 쓰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길거리 종교 포섭이라는 인상을 의식한 듯 “강요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행색은 평범했고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흔히 떠올리는 스님의 인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대화의 흐름은 우연이라기보다 이미 익숙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조상의 덕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50세 이전에 돌아가신 분이 있지 않느냐", "그분의 기운이 지금 붙어 있다"는 말을 꺼냈다.
이어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장남이 아니어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기질을 타고났다"고 덧붙였다.
질문과 단정이 교차하며 대화는 점차 검증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 이들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잠시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하자,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자를 인근 카페로 안내했다.
카페에 도착해 음료를 주문하는 과정에서도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계산대 앞에서 이들은 한발 물러선 채 서 있었고, 기자가 당연히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듯한 인상이 전달됐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그 거리와 태도만으로도 역할이 정해진 듯한 장면이었다.
대화 도중 기자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거나 만지는 모습에 이들의 반응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시선이 휴대전화로 향하거나 대화 흐름이 잠시 끊길 때마다 말을 재촉하거나 대화의 방향을 바꾸려는 모습이 반복됐다.
실제로 기자가 "집에 전화를 한 통 하고 오겠다"고 하자, 이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반응을 보였다.
전화를 하러 나가기 직전에는 "오늘 우리가 만난 이야기는 굳이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통화 종료 후 대화를 이어가던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하는 곳이 있다며, 그곳에서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권했다.
제사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보통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지 않느냐"는 표현을 꺼냈다.
그러면서 이를 본인의 사주를 태우는 것에 비유해 설명하며, 제사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라는 취지로 말을 이어갔다.
통상적인 관용 표현과는 다른 해석이었지만, 제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맥락으로 제시됐다.
이어 제사 준비를 위한 상차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들은 ‘나이값’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개인의 연령을 기준으로 상차림 비용이 산정된다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구체적인 금액 언급은 없었지만, 비용이 수반되는 의례라는 점은 분명히 전달됐다.
설명이 이어지던 중 기자가 "오늘은 시간이 여의치 않으니 다음에 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을 돌리자, 이들은 ‘기일’이라는 표현을 꺼냈다.
일반적으로 조상을 기리는 제사의 기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우리가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날 자체가 하늘에서 보낸 신호"라며, 그날을 기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이 기일을 기준으로 약 21일 동안 해당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말도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가족이나 지인에게 관련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었다.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외부로의 전달을 제한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함께 이들은 제사는 ‘정성'과 '치성’이 필요한 의례라며, 자신들이 먼저 상차림을 준비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차림 비용의 일부라도 사전에 입금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접촉 방식과 대화 구조를 종합해 보면, 이는 유튜브 증언과 피해 사례, 기존 취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돼 온 유사종교·무속 결합형 포섭 공식과 닮아 있다.
보편적인 칭찬으로 경계를 낮춘 뒤, 조상과 가족사를 매개로 불안을 자극하고, 책임과 도리의 언어로 금전 지출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흐름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대진성주회' 소속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당 명칭이 실제 단체를 의미하는지, 혹은 현장에서 임의로 사용된 호칭인지는 불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명칭 자체보다, 접촉 방식과 요구가 일정한 구조 위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만남은 길거리에서 시작됐고, 대화는 개인의 불안과 책임을 파고들었으며, 종착지는 제사와 비용이었다.
이러한 공식은 특정 단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이름과 얼굴로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