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가족을 보느냐, 사건만 보느냐.. 확대 자살을 태하는 국가의 차이
[탐사일보=정병호 기자]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미성년 자녀를 함께 사망에 이르게 하는 확대 자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국가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해외 주요국이 이 같은 사건을 사전 개입의 대상으로 관리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사건 발생 이후에야 문제를 다루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 등 일부 국가는 자살 위험을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경우, 해당 위험이 미성년 자녀에게 확산될 가능성을 함께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들 국가는 정신건강 서비스와 아동보호 체계, 복지 시스템을 연계해 부모와 자녀를 하나의 관리 단위로 본다.
부모가 치료나 상담을 받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자녀의 돌봄 환경과 보호 공백 가능성을 동시에 점검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영국의 경우 부모의 자살 위험이 확인되면 아동보호 기관이 즉시 개입해 가정의 돌봄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단기 보호 조치나 추가 지원을 병행한다.
호주와 캐나다에서도 정신건강 위기 개입 과정에서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양육 중인 경우를 별도의 고위험 조건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자살 위험은 개인의 선택 이전 단계에서 가족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으로 간주된다.
이 같은 대응은 확대 자살을 예외적 비극으로 보지 않고, 관리 실패의 결과로 기록하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확대 자살을 별도의 위험 유형으로 분류해 통계와 정책 평가에 반영하고 있으며, 사건 발생 이전 단계에서 개입하지 못한 지점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한국의 자살 예방 및 아동 보호 대응은 제도상 개인 단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부모의 정신건강 위험은 주로 의료·보건 체계에서 관리되고 자녀의 보호와 돌봄 문제는 복지 체계에서 별도로 다뤄진다.
이로 인해 부모가 장기간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위기를 겪고 있더라도 해당 가정은 통합적인 관리 대상이 되기 어렵고, 부모가 상담을 받거나 복지 지원을 이용한 이력이 있더라도 그 정보가 자녀 보호 체계로 자동 연계되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결국 부모의 위험이 자녀의 위험으로 전환되는 지점에 대한 명확한 제도 기준이나 조기 개입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정 내 위기는 사건이나 사망 등 명확한 계기가 발생한 이후에야 경찰과 사법 체계를 통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자살 고위험군 조기 발굴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중심의 위기 개입을 확대하고, 아동보호체계 개편을 통해 공공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대응은 정신건강 관리와 아동 보호가 서로 다른 법과 제도 아래 운영되고,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위험 정보를 사전에 통합·공유하는 데 제도적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개인 단위 관리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모의 자살 위험을 가족 전체의 위험으로 통합 평가하고 조기에 개입하는 체계는 아직 제한적인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확대 자살은 사건 발생 이후 '극단적 범죄'나 '비극적 선택'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을 뿐, 사전에 탐지하지 못한 구조적 실패 사례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는 않는다.
같은 유형의 사건이 반복되더라도 원인은 개인의 심리 상태나 일시적 상황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고, 위험이 축적되는 과정 자체는 충분히 분석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예산이나 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해외에서는 자살 위험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확산 가능성을 지닌 구조로 관리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사건 발생 이후 책임을 규명하는 방식에 대응이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확대 자살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부모의 위기와 자녀의 위험을 분리해 다루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사한 비극은 다른 가정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의 대응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위험이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제도적으로 점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에서 확대 자살은 앞으로도 예방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 이후에야 설명되는 비극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