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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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보=정병호 기자] 길거리에서 시작된 일련의 접촉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종교적 권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설명과 요구를 종합하면, 이는 개인의 판단을 단계적으로 제약하는 구조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핵심은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드는가에 있다.

이 구조의 출발점은 문제를 검증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데 있다.

조상, 기운, 업, 빙의와 같은 개념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반박또한 쉽지 않다.

이 지점에서 판단의 기준은 객관적 사실에서 개인의 감정과 불안으로 옮겨간다.

특히 이 과정에서 건네지는 설명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해당될 법한 내용이 많아 듣는 사람은 이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부른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설명이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진단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이다.

만남 자차에 '기일'이라는 표현을 부여하는 방식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는 우연한 접촉을 초월적 신호로 재구성하며, 당사자를 사건의 중심에 놓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후 책임은 자연스럽게 개인에게 귀속된다.

"장남 기질", "가족을 책임질 팔자", "외면하면 더 큰 업이 따른다"는 표현은 선택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로 전환한다.

거절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무책임한 선택으로 해석되고, 판단의 여지는 점점 좁아진다.

금전 요구는 거래가 아닌 도리로 포장된다. '상차림 비용', '성의', '정성'이라는 표현은 돈의 성격을 흐린다. 

특히 개인의 연령이나 처지를 기준으로 금액이 산정되는 방식은, 지출을 자발적 선택이 아닌 책임 이행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속았다'고 느끼기보다, '아직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중단을 고민하는 순간에는 시간과 비밀의 장치가 결합된다.

'기일'을 기준으로 일정 기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요구는, 외부의 현실 점검을 차단하고 판단을 유예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여기에 '지금 끊으면 더 안 좋아진다', '이미 시작한 일'이라는 말이 더해지면, 이미 지불한 비용과 들인 시간이 결정을 붙잡는 이른바 매몰비용 효과가 작동한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관여하게 되는 이 구조는, 흔히 유사종교로 분류되는 집단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돼 온 전형적인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조상덕을 보기 위한 상차림’이 법적으로 어떤 쟁점을 가질 수 있는지다.

형법 제347조는 사람을 기망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를 사기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기망행위의 존재 여부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위험이 해소된다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고, 실현 가능성 역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이를 사실처럼 제시하며 금전을 요구했다면, 상대방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종교적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행위가 모두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판례는 종교 활동 자체는 보호하되, 허위 사실이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내용을 근거로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사기 성립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금액 제시, 반복적인 요구, 공포 조성, 외부와의 접촉 차단이 결합될 경우 이는 신앙의 영역을 넘어선 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를 종합하면, ‘조상덕 상차림’은 단순한 신앙 행위라기보다 기망–착오–금전 처분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로 작동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특정 단체의 이름이나 교리가 아니다. 

불안과 책임을 거래로 전환하는 방식 그 자체다.

이러한 접근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개인의 취약성뿐 아니라, 이를 명확히 걸러내지 못해 온 사회적 환경도 존재한다. 

종교와 상담, 치유의 경계가 흐려진 틈에서 검증되지 않은 영적 권위가 금전과 결합하는 순간 피해는 발생한다.

그리고 이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유사한 접근은 언제든 다른 이름과 얼굴로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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