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일보=김여름 기자] 국내 주요 은행에서 희망퇴직이 이어지면서 수억 원대 퇴직금을 받은 중·장년층이 대거 노동시장과 소비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은행권 구조조정이 단순한 인력 감축을 넘어, 퇴직 이후의 소비·재취업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5대 시중은행에서 희망퇴직을 선택한 직원 수는 2000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받는 퇴직금은 특별퇴직금과 법정퇴직금을 합쳐 평균 5억 원 중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기준 희망퇴직자 1인당 평균 특별퇴직금만 3억5000만 원을 웃돌았다.

이 같은 고액 퇴직금은 퇴직 이후 선택지를 넓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장 생계를 위한 재취업보다는 일정 기간 휴식을 취하거나, 창업·자영업·프리랜서 전환을 고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는 부동산 투자나 금융상품 운용으로 자산 관리를 이어가고, 또 다른 일부는 재취업을 전제로 직무 교육이나 자격증 취득에 나서고 있다.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은행권 퇴직자들이 집중적으로 유입되는 분야는 주거 개선, 건강 관리, 여행·레저, 교육 서비스 등이다. 장기 체류형 여행이나 고가 건강검진, 운동·취미 관련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일정 수준의 현금을 확보한 뒤 지출을 계획적으로 집행하는 ‘퇴직금 기반 소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취업 시장에서도 은행 출신 인력은 특정 분야에서 수요가 꾸준하다. 금융·재무 컨설팅, 기업 내부 통제, 리스크 관리, 스타트업 자문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40대 초·중반까지 희망퇴직 대상이 확대되면서, 기대 임금과 실제 시장 수요 간의 간극을 체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고액 퇴직금이 오히려 재취업 결정을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단기간 소득 압박이 없기 때문에 노동시장 복귀 시점이 늦어지고, 이 과정에서 직무 연속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활용해 보다 안정적인 재진입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평가도 공존한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권 희망퇴직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수억 원의 유동 자금이 한꺼번에 풀리는 현상”이라며 “퇴직자 개인의 삶뿐 아니라 소비시장과 재취업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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